1. 학습 정리
1.1. 생존을 위한 친화력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 생존 전략은 친화력에 있다. 이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로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가 있다. 이는 인간이 친화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뇌와 신체를 스스로 변화시켰다는 개념이다. 높은 공격성과 사회적 스트레스는 신체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면역 체계를 약화해 생존과 번식에 불리하기 때문에, 인간은 공격성을 낮추고 친화력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자기가축화의 신체적 증거로는 흰자위(공막)의 발달, 성도의 발달, 뇌의 모양과 크기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영장류 비교 연구를 통해 공격성과 친화력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공격성이 높은 침팬지는 경쟁 상황에서는 상대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만 협력 상황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반면, 친화력이 높은 보노보는 협력 상황에서 상대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고 친화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는 협력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친화력이 인간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1.2. 집단역동과 친화력 발달
인간의 생물학적 친화력은 집단 형성의 기초가 되지만, 집단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절된다. 1961년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의 집단 정체성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서로 모르는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경쟁시켰을 때는 적대감과 공격성이 나타났지만, 두 집단이 협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주자 적대감이 사라지고 하나의 집단으로 융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고고학적 가설들은 인간이 농경을 시작해서 모여 산 것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어 살기 위해 농경을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이는 타인을 나와 동등한 개인으로 인식하고 포용하는 유연한 집단 정체성이 변화하는 환경에서의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관계 선택에는 배제와 동조의 심리도 작용한다. 선분 판단 실험(Asch, 1956)에 따르면 인간은 집단의 압력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며, 유아기 때부터 방해자를 배제하고 협력자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인다(Hamlin, 2007). 뇌과학적으로 사회적 배제로 인한 고통은 신체적 통증과 동일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간은 내집단의 방해물로 인식되어 배제되지 않기 위해 집단 안에서 동조하고 협력하려 노력한다. 반면, 외집단을 경쟁 상대로 인식할 경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1.3. 생존을 위한 공감능력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은 타인의 의도, 감정, 사고를 이해하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다. 이는 나와 타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는 사고 과정으로, 영유아기부터 발달한다. 특히 틀린 믿음(false belief)을 이해하는 능력은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여 적절히 반응하게 하고, 양육자로부터 필수적인 돌봄을 받게 하는 생존 수단이 된다. 또한, 영유아는 양육자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바탕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동하며, 이러한 신뢰는 마음이론 형성의 신경생물학적 토대가 된다.
인간의 공감 능력은 크게 두 가지 체계로 나뉜다. 첫째, 직관적 감정이입은 거울뉴런과 섬엽을 기반으로 타인의 신체 상태를 시뮬레이션하여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으로, 내집단 구성원에게 잔혹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둘째, 분석적 관점이동은 측두두정엽을 기반으로 타인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학습과 의사소통을 통해 발달하며 생존력을 높인다.
인간은 자제력과 언어를 통해 혈연을 넘어선 유연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생존해왔다. 그러나 권력에 취한 뇌는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는 감정이입 능력이 저하되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집단 정체성을 유연하게 변화시키고, 고도의 공감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2. 적용점
2.1. 엑스칼리버에 대해
스페인 산맥에 위치한 동굴 유적에서 고인류(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유해 28구와 함께 붉은색 규암으로 만들어진 주먹도끼 한 점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돌도끼에 전설 속 아서 왕의 검 이름을 따 엑스칼리버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돌도끼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보통의 석기들이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로 만들어지고 사용한 흔적이 뚜렷한 것과 달리, 엑스칼리버는 그 지역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한 붉은색 규암으로 제작되었으며 사용된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학자들은 이 돌도끼가 우연히 구덩이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바친 인류 최초의 부장품(무덤에 함께 묻는 물건)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시기에도 이미 죽음을 애도하고 망자를 기리는 사고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진다. 즉, 엑스칼리버의 발견은 인간이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살았던 것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공감하며 사회적 유대를 확인하는 장례 문화를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2.2. 섭취의 재해석
일부 문화권의 식인 장례 풍습과 기독교의 성체성사는 섭취를 통해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다. 고인의 시신을 땅속에서 부패하게 두는 것은 비정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시신을 먹어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하는 길을 택했다. 이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취함으로써 신과 영적인 합일을 이루려는 성체성사와 맞닿아 있으며, 두 의식 모두 물리적 죽음을 넘어 소중한 존재를 자신의 내면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테마는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강렬하게 재해석된다. 최근 국내 관객 330만 명을 동원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인 체인소맨 원작의 서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인공은 인류를 위협하는 최후의 적이자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을 물리치기 위해, 공격이 아닌 섭취를 통해 그녀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한다. 상대를 파괴하는 대신 자신과 통합하여 죄까지 함께 짊어지고 함께하겠다는 모습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사랑의 고백이다. 이는 식인 장례나 성체성사의 욕망이 현대 콘텐츠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타자를 삼켜 내 안의 일부로 만드는 행위는 생명 진화의 가장 결정적인 도약이었다. 약 20억 년 전, 거대한 단세포 생물이 산소를 사용하는 작은 박테리아를 포식했으나 이를 소화시키는 대신 공생을 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류를 포함한 진핵생물의 기원이 된 세포 내 공생설이다. 먹힌 박테리아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되었고, 포식자 세포는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주며 둘은 더 강력하고 복잡한 생명체로 거듭났다. 결국 타자를 일부로 통합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탄생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