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습 정리
1.1. 스트레스와 스트레스원
이번 강의는 스트레스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단정하기보다는, 변화한 환경에 맞추기 위한 몸과 마음의 ‘적응’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했다. 스트레스(stress)는 물리학 용어로 물체에 가해지는 힘을 뜻한다.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려는 반응으로 본다. 핵심은 ‘고통이 있는가’가 아니라 ‘적응할 과제가 있는가’다. 적응에 성공하면 통제감과 유능감이 커지고, 고통에만 집중하면 만성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의 촉발 요인인 스트레스원(stressor)은 부정적인 정신적 외상 사건(traumatic event)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급, 결혼, 이사처럼 삶의 중요한 전환이 되는 생활 사건도 재적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결국 스트레스의 크기는 사건의 명암이 아니라 요구되는 적응의 크기로 결정된다. 그래서 행복과 성취는 종종 스트레스와 동시에 나타나며, 하나의 과정처럼 엮여 있다.
1.2. 신체 조정과 트라우마 전환
신체 수준에서는 경고, 저항, 소진으로 이어지는 적응이 작동한다. 초기에는 자원을 신속히 끌어모아 대응하고(경고), 한동안 높은 각성을 유지하며 버티다가(저항), 회복할 기회를 놓치면 시스템이 방전되듯 무너진다(소진). (이러한 비축 행동은 빠르게 행동하기 위한 뇌 프로세스의 선결정/예측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스트레스는 에너지를 축적하고 방출하는 사인파를 그리는데, 비축 없이 과방출이 반복되면 휴식이 필요한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밖의 위협이 지속되면 몸은 이를 생존 위기로 분류해 일명 ‘트라우마 스트레스 체제’로 전환한다. (따라서 트라우마는 스트레스 반응의 일종이다.) 이 단계는 단순 휴식만으로는 복구되기 어렵다.
1.3. 각성조절과 트라우마
트라우마 맥락에서 중요한 개념이 인내의 창(WOT; Window of Tolerance)과 각성조절(Siege, 1999)이다. 이 창 안에서는 마음챙김과 메타인지가 작동해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협상, 공감 같은 유연한 조절이 가능하다. 창을 벗어나 위로 치우치면 과각성(Hyperarousal)이 되어 싸우거나(투쟁: 분노, 반발) 도망치는(도피: 공포, 불안) 습관화된 반응이 우세해지고, 논쟁/비난/압박같은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창 아래로 떨어지면 저각성(Hypoarousal)으로 얼어붙거나(경직) 무력해지고, 감각 차단 → 감정 차단 → 행동 불능의 연쇄 작용이 이어진다. 과각성과 저각성이 번갈아 촉발되는 경험이 반복되면 외상 사건(traumatic event)이 되고, 신체는 이후 비교적 사소한 자극에도 창 밖으로 쉽게 튀어나가게 학습된다.
이 과정의 신경생리적 배경은 자율신경계의 조절이다. 위협을 감지하면 교감신경이 가속 페달을 밟아 각성을 끌어올리고,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다미주신경(2017)에 따르면 부교감 중에서도 배쪽 미주신경은 안전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과각성을 진정시키는 정교한 회로로, 애착 경험을 바탕으로 발달한다. 반면 등쪽 미주신경은 ‘죽은 척’ 반응처럼 소진되는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려 생존을 도모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감각/감정/사고가 차단된다.
1.4. 손상(PTSD)과 회복
트라우마가 남기는 흔적은 기억의 방식에서 드러난다. 적절한 도움 없이 외상 사건을 겪으면, 그때의 신체감각과 정서를 침습(flashback)적이고 시간성 없는 암묵기억으로 남긴다. 이는 외상 기억(traumatic memory)으로 이를 예측하고 빠르게 대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재가 안전해도 유사 자극만으로 침습되고, 감각이 왜곡되는 상황이 온다면 일상에서 안전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Disorder)는 일종의 기억 장애로, 유사한 촉발 자극에 의해 돌발적으로 외상 기억이 인출되어 안전한 상황에서도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PTSD는 침습, 침습 회피, 부정적 인지, 정서 변화, 과각성, 해리같은 특징적 패턴을 갖는다. 이 중에서 단순 PTSD가 아닌 복합 PTSD는 관계 속에서 반복/고의로 가해지는 복합 외상(complex trauma)에 의해 발생한다. 단순 외상보다 통제력, 자기 인식, 대인 관계 능력의 손상이 더 크고 수치감을 동반한다.
회복은 단계적(Herman, 1997)이다. 첫 단계는 무엇보다 안전과 안정화다. 외부 환경의 안전을 확보하고, 손상된 자기조절을 회복한다. 이를 위해 신체/정서 그라운딩, 자기연민, 경계 인식과 주장 훈련 같은 대인기술, 해로운 회피를 대체하는 적응적 회피 기술을 익힌다. 둘째 단계는 기억의 재통합으로, 외상기억을 안전한 일상기억과 연결해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지속적 노출, EMDR, 내러티브/신체기반 접근 등 다양한 근거기반 치료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의미 만들기의 단계에서 사람은 우선순위의 재편, 삶과 관계에 대한 감사, 실존적 성찰을 통해 외상후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일부는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변화를 위한 자원으로 전환한다.